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동물의 권리가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식물은 동물을 위해 존재하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동물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세 기독교에서 역시, 동물은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운명이자 신의 섭리로 간주되어, 동물을 사용하거나 죽이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인간과 동물의 몸은 자동 기계인데, 인간과 달리 동물에게는 정신 또는 영혼이 없어 쾌락이나 고통을 경험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데카르트는 마취도 없이 살아있는 동물을 해부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당시에는 마취술이 없었을뿐더러, 그에게는 동물이 아파하는 행동도 진정한 통증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역시, 이성과 도덕을 갖는 인간의 이익이 그렇지 못한 동물의 이익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동물을 잔혹하게 대하는 것에는 반대했는데, 이는 동물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교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전통은 현재 동물실험을 옹호하는 여러 입장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동물실험이 정당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주로 근거로 삼는 것은 도구 사용 능력이나 언어 능력, 또는 이성 등 인간이 갖는 고유한 특성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근거로, 인간과 동물을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과 동물을 절대적으로 가르는 특성을 명확히 구분해낼 수 없더라도, 사람들끼리 서로 같은 인간 종이라는 그룹에 속해있다는 직관적인 사실이 동물실험의 정당성을 보장해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같은 DNA 또는 유대감을 공유하는 구성원으로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만이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동물을 실험에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동물행동학 연구들은 동물들에게도 지능이나 문화가 존재함을 밝히는 등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를 부정하는 결과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복지를 주장하는 생명윤리학자들은 설사 인간과 동물이 이성이나 언어 능력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이 동물실험을 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들이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쾌고감수능력(sentience), 즉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이들은 동물이 인간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과 동등하게 배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벤담(J. Bentham, 1748~1832)의 공리주의 철학에 입각한 것으로, 통증과 고통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며 인종이나 성별 또는 동물의 종류와 관계없이 예방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공리주의자라면 인간의 고통은 물론 동물의 고통에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명한 생명윤리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는 인간의 행복만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인간중심주의는 일종의 종차별주의(speciesism)이며, 결국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공리주의적 입장에 선 학자들은 동물실험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체 복지의 감소를 초래하는 상황을 문제 삼습니다.
따라서 동물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의무 속에서 전체적인 복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일부 동물실험은 허용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레건(Tom Regan, 1938~)과 같은 철학자는 각 동물 개체가 '삶의 주체'(subject of a life)로서 갖는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물에게는 실험에 이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믿음, 욕구, 지각, 기억, 미래에 대한 의식, 감정, 행위 능력, 정체성 등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는 존중되어야 하며 결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몇몇 포유류와 같이 개체로서의 가치와 동물권을 지니는 대상은 그 어떤 실험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철학적 입장은 다양하며, 각 입장에 따라 도덕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동물의 범위도 달라집니다.
실제로 동물의 쾌고감수능력이나 지각 능력 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분분하며, 이에 따라 동물실험의 허용 범위와 개선 방안도 달리 제시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문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물실험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평가해보고, 그 절차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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