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앞서 지어진 고층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의 건축물일 뿐 아니라 성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유명할 것입니다.
바벨탑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짓기로 하는데, 신이 인간의 오만함을 벌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고, 결국 탑을 끝까지 쌓지 못한 채 온 세상에 흩어졌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함으로만 해석한다면 좀 아깝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이들은 노아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홍수에 대한 대비책으로 높은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신의 입장에서 괘씸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대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불신한 거니까요.
그래서 그 벌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건축물을 쌓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주제는 왜 바벨탑이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한데 모여 살던 인간들이 어쩌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됐느냐입니다.
그 이유는 성서에 따르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이고 그것은 신에게 받은 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이룬 문명의 힘이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는지 알려줍니다. 바로 ‘소통’입니다.
‘바벨’이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며 세상 최초의 영웅인 님로드(Nimrod)가 세운 도시였습니다. 훗날의 바빌론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에 따르면 그때 세상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다고 하는데요. 상상만 해도 참 멋지지 않은가요?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설치미술가 마르타 마누힌도 바벨탑에 대해 이와 같은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예술가들의 꿈,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내부 갈등이 없는 곳.”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마르틴 광장에 21세기 바벨탑을 제작해 설치한 적이 있는데, 같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형상화한 작품이었습니다.
마누힌은 ‘무한수의 육간 진열실로 만들어져서 세상의 모든 책이 보관돼 있는 바벨의 도서관’을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3만 권의 책을 28m 높이로 쌓아 올린 나선형 모양의 탑으로 시각화했습니다.
바벨탑을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말이 통해서 갈등이 없는 곳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곳이야말로 이상향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바벨탑을 신화나 상상 속의 건물로 여길 수 있지만 많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건축학자들은 실재한 고대의 건축물로 믿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벨탑의 높이가 90m라고 주장했는데 현대 학자들이 추정하는 높이는 약 7층가량, 위치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90km가량 떨어진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태동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였습니다. 이곳에 바벨탑이 세워진 시기는 늦어도 지금으로부터 약 3천4백여 년 전이었을 거라고 하는데요.
〈창세기〉가 기록된 것이 B.C. 1440~1400년 사이라는 근거에 따른 것입니다. 이때 바빌론은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B.C. 587년 유대인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빌론의 멸망을 예언한 후로 이 지역은 오늘날까지 전쟁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바벨탑이 있던 곳이 바빌론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에리두가 더 유력하다고 합니다.
에리두 역시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도시 중 하나로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신전으로 세워졌는데 계단형 피라미드였고 열여덟 번이나 개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에리두뿐 아닙니다. 이라크 남부의 곳곳에 이런 대규모 건축물들이 묻혀 있습니다.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된 우르크가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 세계최초의 대규모 건축유적이 발견됐지요.
학자들은 이보다 더 큰 유적지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이라크 남부는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 이르는 인류의 문명이 차례대로 꽃을 피웠던 지역이니까요.
수천 년이 흐르는 오랜 세월 건축물과 도시는 사막의 모래바람에 묻혀 그저 단순한 언덕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 아래 묻혀 있는 것은 인류 역사의 비밀입니다.
어쩌면 바벨탑이 어디에 있었느냐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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