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사람들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했습니다.
두 대의 대형 여객기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하여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습니다.
1시간 후 높이 100여 층의 빌딩은 마치 거짓말처럼, 거대한 흙먼지와 함께 천천히 위로부터 무너져 내렸습니다.
같은 시각 버지니아 알링턴 소재 미 국방부 건물에도 여객기 한 대가 충돌하여 아비규환의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또 다른 여객기 한 대는 펜실베이니아 주 남쪽의 산지에 추락했습니다.
방향으로 보아 이 여객기는 수도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향하고 있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적 공격이었습니다.
60년 전 진주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기습이었고 거의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3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은 순식간에 전쟁의 공포에 빠져 들었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각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동화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미국에 대해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였을까요?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정부는 신속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모든 공항에서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었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에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전면 무력 사용을 허가하는 비상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중앙정보부(CIA)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여 이 비극적 사태의 배후를 찾아 나섰습니다.
항공기 납치범들은 알 카에다라는 한 반미 이슬람 무장단체 단원들이었고,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출신의 테러리스트가 조직을 이끌고 모든 일을 계획했음이 밝혀졌습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비호 아래 그곳에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그의 인도를 요구했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거부하자 즉각 군사 행동에 나섰습니다.
10월 7일 폭격기에 의한 공습을 시작으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면적 군사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힘껏 저항했으나 전 군사력을 동원하다시피 한 미군과 나토군의 공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11월 12일 수도 카불이 미군에 함락되었고, 이후 몇 차례 대규모 전투에서도 미군과 연합군이 승리하여 전쟁은 사실상 미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미국이 찾던 빈 라덴은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며 도피를 계속했으나 결국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미군 특수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미국의 공세는 아프가니스탄과 알 카에다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테러 공격을 기도하는 모든 세력과 이들을 비호하는 국가들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이라크, 이란, 북한을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중 이라크에 대해서는 2003년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여 반미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란과 북한에 대해서도 군사적 공격을 위협하며 그들의 테러리스트 지원과 대규모 살상 무기(WMD) 개발 계획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또 다른 테러리스트 공격을 막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른바 애국법을 만들어 공항과 항구에서의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반정부 활동에 대한 전면적 감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외국인들의 미국 입국과 이민에 대한 제한 조치도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 9·11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제거한 것, 이후 다행히 미국에 대한 또 다른 대규모 테러리스트 공격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제외하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아직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험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국내외 여론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공격적인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9·11 사태가 몰고 온 정신적 충격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 경기 침체와 국력 쇠퇴로 실의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9·11 사태는 절망적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9·11 사태는 아직도 미국인들의 삶과 생각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9·11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 여파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9·11 사태는 분명 현대 미국사의 가장 충격적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의 역사적 의미를 지금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자본주의와 미국에 비판적인 사회학자 월러스틴은 "세계무역센터와 함께 미국과 자본주의도 무너져 내렸다."면서,
9·11 사건을 자본주의와 미국 패권의 종식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문명충돌론》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에게 9·11 사건은 본격적인 '문명 충돌'의 시작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9·11 사건 자체는 비극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미국에게는 새로운 패권적 질서 구축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문명의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9·11 사태는 최소한 앞으로 벌어질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갈등, 그리고 중동에서의 위험한 사태 발전을 암시합니다.
9·11 사태가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친이스라엘적 중동 정책에 대한 반발과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미국이 전반적으로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앞으로 중동에서는 미국에 도전하는 위험한 소요 사태와 전쟁의 불안한 상황이 조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이 미국에 대한 또 다른 테러 시도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9·11 사태 이후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결국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분명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을 이 전쟁에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미국의 위상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사태 진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그런 능력을 이미 상당 부분 상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 세계 경제력과 군사력의 절반을 호령했던 그 미국이 아닌 것입니다.
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바로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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