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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편 전쟁의 영향(feat. 강경 대응, 사형, 주변국)

by 에이스토리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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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편 전쟁, 간단정리(feat. 1차, 2차, 난징조약, 톈진조약)

 

중국 아편 전쟁, 간단정리(feat. 1차, 2차, 난징조약, 톈진조약)

아편 전쟁(Opium Wars)은 19세기 중반에 청나라(현재 중국)와 대영 제국(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을 말합니다. 제1, 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완패함으로써 중화사상은 뿌리째 흔들리

arhim123.com

 

청나라는 아편전쟁 전까지만 해도 대국, 동양의 잠자는 사자 등의 '침묵의 강자'라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선뜻 시비를 걸지 않았으나,

 

전쟁 이후 허약한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자 청은 서구 열강의 덩치 큰 호구,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비슷한 시기 참전한 크림 전쟁에서는 두 나라가 무려 40만 대군을 투입해 러시아 제국을 상대한 데 비해,

 

2차 아편전쟁에서는 겨우 20분의 1 정도인 2만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청나라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얼마나 동서양의 국력 차이가 벌어져 있었고 중국이 동네북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이후로도 중일전쟁까지 거의 100년 동안 중국은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며, 중국인들은 이 기간을 치욕의 시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

영국 동인도 회사 군대에 의해 청이 패배했고, 조선도 이 소식을 듣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청이라는 거대한 방패 뒤에서 존재하던 조선은 청나라보다도 정치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있었기에, 서양 열강이라는 새로운 적들이 등장하자 백성들 사이에는 조선도 서양인들에게 멸망당하지 않을까 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죠.

 

이는 동학이라는 신흥 종교의 창설로도 이어졌습니다.

 

임칙서

제1차 아편전쟁 이전 아편 무역에 정면으로 맞섰던 임칙서는 현재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습니다.

 

허나 대중국 무역 침탈은 가속했어도 아편 자체의 판매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편이란 게 양귀비를 가공하면 뚝딱 나오다 보니 중국이 아편의 국산화에 성공해버렸기 때문이죠.

 

결국, 영국령 인도의 아편들은 판로를 잃었고, 이는 영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영국은 왜 청이 아편을 단속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때는 늦어 영국에 아편이 대량 보급된 후였습니다.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은 현재도 마약과 관련된 범죄만큼은 무관용 원칙의 강경 대응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편전쟁으로 처참한 패배를 맛보면서 이것이 대대적인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던 것이죠.

 

광서신정 때부터 아편 단속을 꾸준히 강화해온 결과, 중국 및 대만은 물론 타 중화권 국가인 싱가포르나 중국 주변 한자문화권 국가들에서도 마약 정책은 서양이나 한자문화권 밖의 국가들보다 법률이 엄격한 편입니다.

 

특히, 중국의 마약 정책은 주변 국가들과 비교해도 유달리 엄격해졌으며 일정량 이상 제조, 유통까지 가게 되면 최소 종신형으로 시작해서 최고 사형까지도 집행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옆 나라 일본도 마약에 대해서는 역시 강경 대응하며, 한국은 유달리 마약 관련 처벌은 서방 선진국가에 비해 처벌이 미약한 편이며, 최근 들어 국내 유통되는 마약 양이 전해에 비해 12+@배가량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위간부 자녀/연예인이 마약과 관련되었으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인맥이 약한 일반인 등의 마약 관련 처벌은 수위가 높은 편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마약 관련 처벌이 매우 무거운 편인데, 아편전쟁의 후유증이 그 근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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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 성향의 한국 누리꾼들도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마약 때문에 경을 쳤다는 소식을 듣거나 마약으로 인해 어느 특정 인물이 구속 또는 소환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진보, 보수 진영 가릴 것 없이 마약만큼은 중국의 강경책을 옹호하는 등 전반적인 국민 여론도 마약을 죄악시하는 편입니다.

 

중국의 이런 강경책은 외국인이라도 다를 게 없어서 한국인 마약 사범이 체포되자 바로 사형 때리고 실제로 집행한 일이 2014년 말에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당시 한국인 마약사범을 체포하고 중국은 바로 한국 정부에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고 통보를 날렸으며,

 

이를 접수한 한국 정부 측에서 "형을 집행하지 말고 당장 한국으로 양도해 달라."라고 요구했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형을 집행한 다음에 집행이 끝났다고 통보를 전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죠

 

2009년에는 파키스탄계 영국인 아크말 샤이크가 마약 밀수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영국 정부에서는 샤이크의 정신병 경력을 제시하며 샤이크의 감형을 호소했지만, 중국은 샤이크를 사형시켰죠.

 

유럽인이 중국 공산당 집권 후 처형을 당하는 전례 없는 사건에 대해 영국과의 외교 문제로까지 떠올라 큰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양국이 벌인 기싸움은 몹시 오래갔습니다. 세간에서 다시금 아편전쟁을 떠올린 것은 덤이죠.

 

마약 운반은 싱가포르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함

싱가포르는 아예 입국 신고서 서류에 마약 밀수는 사형이라고 경고 문구가 써져 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과장된 면도 없지 않은데, 단순 마약 소지 및 흡입 범죄는 마약 제조 및 판매, 유통 범죄에 비해 엄벌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사회 유력인사들이 암암리에 빠져나간다는 점도 그렇죠. 중국 유명 가수인 인 샹제나 성룡의 아들인 방조명은 그냥 단순 소지 및 흡입만 해서 징역 6개월 및 벌금에 그쳤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중국 네티즌들에게 쌍욕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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