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선 기름 다 떼어내 먹고 치킨, 달걀도 안 먹는데 고지혈증이라고요?”
“저 비건이어요. 고기 안 먹는데 콜레스테롤이 이렇게? 검사 잘못 됐어요.”
건강검진을 받고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보고 상담의사에게 역정을 내는 사람이 가끔씩 있습니다.
음식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결정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콜레스테롤의 비밀이 한 겹 두 겹 벗겨지고 있지만, 한번 믿었던 상식을 버리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1. 음식이 콜레스테롤과 관련있다?
사실, 음식이 핏속 콜레스테롤 함량과 정비례한다는 상식은 깨진지 오래입니다.
미국 식생활지침자문위원회(DGAC)는 2015년 “음식으로 섭취한 콜레스테롤이 핏속 콜레스테롤 수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발표했고, 미국에선 하루 300㎎ 이하로 권고했던 콜레스테롤 섭취 기준이 폐지됐습니다.
과학은 체내 총 콜레스테롤의 75~80%는 간과 소장, 부신 등에서 합성되고, 나머지는 음식 섭취와 관계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들 장기 가운데 간이 ‘본공장’ 격인데 콜레스테롤을 너무 적게 섭취하면, 간은 체내 다른 물질로부터 원료를 짜내서 콜레스테롤을 합성합니다.
따라서 콜레스테롤 탓에 음식을 가려 먹으면 간만 피로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콜레스테롤≒나쁜 물질, HDL(고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좋은 단백질, LDL(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나쁜 단백질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의 생성과 유지에 필수이고 쓸개즙, 비타민D 등의 '원료‘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을 때 심혈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LDL도 많을 때 문제이지만, 너무 적어도 뇌출혈을 비롯한 심뇌혈관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HDL은 얼마 정도까지는 건강에 좋은 작용을 하지만 지나치게 수치가 높으면 마찬가지로 해롭습니다.
따라서 ‘허물어진 상식’ 때문에 음식에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콜레스테롤 덩어리’로 알려진 새우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을 먹어도 혈중 LDL(저밀도지단백) 수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들 음식에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으면서 HDL(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도 풍부해 보통 사람에겐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2. 운동을 하면 콜레스테롤이 낮아진다?
운동도 비슷합니다.
앞서 설명한, 간의 콜레스테롤 조절 메커니즘 때문에, 운동만으로는 LDL 수치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운동이 체지방을 감소시키므로 지방조직에서 나온 LDL 수치를 줄이고, HDL을 증가시켜 혈관 건강을 개선하므로 운동이 필요합니다.
물론, 콜레스테롤 수치가 환자 수준인데도 아무 것이나 먹고 운동에 신경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총콜레스테롤이나 L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이 기준치보다 높거나 HDL이 지나치게 낮은 ‘이상지질혈증’으로 진단받으면 식사요법과 운동에 신경쓰면서 필요하면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3. 콜레스테롤의 유전적 요인은?
콜레스테롤의 변화에 음식,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유전이나 호르몬 분비 변화입니다.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Familial Hypercholesterolemia) 같은 병이 있으면 간에서 LDL(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식단 조절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성은 폐경과 함께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서 LDL 콜레스테롤이 상승한다. 갑상선기능저하증 역시 LDL 수치를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갑자기 바뀌면갑상선 기능 검사를 받는 게 좋습니다.
콜레스테롤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전, 호르몬 분비, 생활습관 등을 고려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TV나 온라인의 정보에 현혹돼 특정 음식을 탐닉하거나 피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주치의의 ‘맞춤 처방’을 잘 메모했다가, 실천하는 것이 혈관건강에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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