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란 통상적으로는 통화위기(currency crisis)라 하고 포괄적으로는 경제위기라 합니다.
기업경영과 금융 부실이 드러나 대외 경상수지 적자로 외환 보유고가 크게 떨어져 결제 외환 확보에 허덕이게 되면, 먼저 대외 신뢰도가 떨어져 해외로부터 외환 차입이 어려워지게 되고 외환시장의 불안으로 환율 상승의 압력이 가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악순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외국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며, 화폐가치와 주가가 폭락하여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예금주들은 일제히 금융기관으로 몰려가 예금을 인출합니다. 이어 기업의 도산이 속출하고 실업자가 양산되어 사회적 불안이 가중됩니다.
이러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대부분 국제통화기금(이하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과 금융·기업·노동 등 경제주체의 개혁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긴축과 가혹한 구조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과 경기 악화, 실업률 상승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아르헨티나가 오일쇼크 및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인한 고금리 지속, 방만한 재정운영, 대외차입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경험하였으며, 1994년에 멕시코, 1999년 브라질 등이 경제 침체,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 등으로 외국자본 유입이 중단되면서 외환위기를 맞게 됩니다.
1997년에는 투자 과잉 속 기업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외자도입 등의 원인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경험하였습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한국은 금융기관의 부실, 차입 위주의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외채의 급증 등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여, IMF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각각 70억 달러와 37억 달러를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1997년에 발생한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원인은 크게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내적 요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는 교역조건 악화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확대, 기업 실적 하락 및 단기차입의 빠른 증가입니다.
1995년 3분기부터 시작된 일본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악화되었으며,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4%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금융부문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위해 단기차입을 급속도로 늘려 왔으며, 이에 따라 대외지불 부담이 1992년 629억 달러에서 1996년 1,643억 달러로 연평균 27% 증가하였습니다.
결국 실적 악화로 인하여 단기채무를 상환하지 못하자 한보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기아자동차 그룹, 해태그룹, 뉴코아그룹 등이 연쇄적으로 도산하였습니다.
대외적인 요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한 아시아 개도국 시장 전체에 대한 불안감 확산이었습니다.
1997년 10월 홍콩과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주식시장 전체가 무너졌으며, 이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추면서 해외 채권자들의 대규모 자금 인출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불안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통상적으로 경제상황이 정상적일 때에는 단기채무의 만기 연장이 용이한 반면, 위기 상황 시에는 채권자들이 단기채무의 만기를 더 이상 연장해주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의 자금인출량이 한국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를 초과하면서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8년 우리나라 실질임금은 9.3% 감소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원달러 환율이 1,995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IMF는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우리나라 경제 체질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재정·금융 긴축과 대외개방,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기업의 투명성 제고 등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외에 미국식 감사위원회의 도입, 높은 콜금리 수준 등 국내 상황에 맞지 않는 요구 역시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외환시장과 물가안정을 위한 고금리 정책, 재정 긴축은 물론, 수요 억제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 정책을 추진해 단기성 고금리 차입금인 보완준비금융(SRF) 135억 달러를 1999년 9월에 조기 상환하고, 60억 달러의 대기성차관자금(SBL)을 2001년 1월부터 상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같은 해 8월 23일 1억 4000만 달러를 최종 상환함으로써 2004년 5월까지 갚도록 예정되어 있던 IMF 차입금 전액인 195억 달러를 조기 상환하였는데, 이는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3년 8개월 만이며, 당초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빚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로써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MF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9억 달러로 떨어졌던 외환보유액이 2001년 9월 현재 990억 달러에 달함으로써 세계 5위의 외환보유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IMF로부터의 차관은 조기에 상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부문에서는 부실기업 퇴출, 기업 합병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은행 부문에서는 과도한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노동부문에서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경제 여건에 따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기업 구조조정, 정리해고, 정년단축 등이 도입되었으며,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정부는 고용보험, 기초생활보호법 등 사회복지 정책을 외환위기 전 대비 강화했으나, 외환위기 이전 대비 이후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었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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